2008년 06월 02일
알카트라즈 섬
이 감옥은 해변가에서 1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탈출을 감행한 죄수 중 공식적으로 성공한 자는 없다고 한다. 건설 초기에 비해 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감옥의 중앙 블록과 식당, 그리고 서부에서 가장 처음으로 세워진 등대 등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금주법 시대의 악명 높은 알 카포네가 감금되었던 독방 등의 시설도 아직 볼 수 있으며 희망자에게는 완전 방음된 독방에 30초 동안 들어가게 해주는 투어도 있다.
군 형무소에서 미 연방 감옥으로...
알카트라즈는 공식적인 연방 교도소가 되기 이전에는 록키 산맥 서부 지역 군 소속의 군 형무소였다. 1907년 새로운 교도관들과 $250,000라는 예산이 투입되면서 이 곳은 캘리포니아 주 최고의 예술적인 형무소로 거듭 났다. 감옥은 삼 층짜리 독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자체는 옆에 위치한 등대보다 조금 더 높다. 감옥은 한 번에 600명 까지 수용할 수 있었으며(독방 하나에 한 명씩) 난방시설, 조명시설, 통풍시설 등을 비롯해서 조리가 가능한 주방까지 갖추고 있었다. 감옥 재건축 공사는 1911년 후반에 마무리 되었다.
이후로 알카트라즈는 계속 내-외부 보수 공사를 하면서 군 교도소의 자리를 지켜왔다. 워낙에 재건 사업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한때는 "재건사업의 표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였다. 하지만 교도소의 관리 비용이 워낙 많이 드는 상황이었고 마침 미 법무부에서는 그 즈음에 "쓸만한 교도소" 하나를 물색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곳은 법무부에서 찾던 바로 최적 조건을 갖춘 교도소였고, 결국 1933년 10월 13일 알카트라즈는 미 법무부 관할로 넘어가게 된다.
법무부로 소속이 바뀌자 마자 알카트래즈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더 많은 독방들이 지어졌으며, 날카로운 철조망이 형무소를 중심으로 둘러졌다. 또한 이전에 군 요새로 사용되던(혹은 종종 죄수들이 숨기 좋은 장소로 애용 되었던) 건물들이 시멘트로 단단히 봉쇄되었다. 또한 게이트가 세워졌고 전화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알카트라즈는 새로운 죄수들과 간수들로 다시 채워지면서 연방감옥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알카트라즈 연방 감옥, 문을 열다!
알카트라즈 교도소는 1934년 7월 1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알카트라즈에 얽힌 여러 가지 소문이 끊임없이 돌기 시작했다. 많은 작가들은 알카트라즈를 고문이 난무하는 무시무시한 교도소로 묘사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형을 지낸 과거가 있는 사람들의 진술은 이러한 소문들을 뒷받침 해주곤 했다. 이렇게 알카트라즈에서 형을 마치고 나온 몇 사람들은 잡지나 책 등을 통해 자신들의 악몽 같은 감옥 생활을 이야기 했다. 이중 일부 이야기는 독방에서 겪은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독방은 여타 감방과 구별되어 이 곳에 갇히는 죄수는 다른 죄수와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일을 하지 못하도록 격리되었다. 이 독방은 언제나 캄캄하며 매우 좁고 추웠다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독방에 갇히는 자들은 주로 감옥 내에서 폭력을 사용했거나 탈출을 기도했던 자 또는 호모들이었다고 한다. 독방에 감금되는 기간은 격리되는 사유의 등급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 기간은 짧게는 몇 일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가기도 했다고 한다.
악명 높은 고문과 함께 알카트라즈는 잔인한 내부적 사건들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이러한 잔인 무도한 행위는 죄수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 중의 한 예가 죄수들 몇 명이서 제비를 뽑아 자신들이 싫어하는 다른 죄수를 누가 죽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Henry Floyd Brown라는 전 복역자는 이와 같은 잔인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반적인 시민들의 삶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알카트라즈와 같은 감옥에서는 상처를 입었거나 죽어가는 사람을 봐도 그냥 무시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자가 왜 상처를 입고 있는지 알 길도 없을 뿐 더러, 어쩌면 그 자는 그 날의 '게임 타겟' 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죄수와 간수들 사이에서의 폭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한다. 일단 간수들과 문제가 생기면 독방에 갇히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간수들도 이곳의 죄수들은 더 이상 살 의욕이 없으며 어느 순간에 자살을 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실패로 돌아간 수 차례의 시도
알카트라즈 감옥 탈옥에 성공한 자가 있다는 수많은 루머와는 달리 지금까지 실제로 탈옥에 성공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수의 죄수들이 여러 번 탈옥을 시도 했고 그 중 몇은 실제로 감옥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는 성공 했으나 모두가 결국은 발각되어 잡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와야 했다.
'Eyewitness on Alcatraz(알카트라즈의 목격자)' 라는 책에서는 1937년에서 1958년 사이 14차례의 탈출이 시도되었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죽음으로 끝이 났다고 하는데, 이 탈출 기도자들의 사인은 대부분 차가운 바다의 수온 때문이거나 바닷물의 역류, 또는 상어의 습격, 부실한 보트나 뗏목 등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탈출 방법도 다양했는데 Huron Ted Walters 라는 한 죄수는 부력을 만들어 낼 생각으로 몇 개의 캔을 허리에 묶고 바다 속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악마의 섬 알카트라즈를 빠져 나가려는 이들의 끝임 없는 욕망은 인간의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서 다양한 탈옥 방법을 낳게 했다.
알카트라즈 연방 감옥, 문을 닫다.
한 번의 탈옥도 용납하지 않은 알카트라즈는 그렇게 완벽한 감옥이었음에도 불구, 왜 문을 닫아야만 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설이 있지만, 문을 닫을 당시 실제로 알카트라즈는 매우 빠르게 쇠퇴하고 있었다. 알카트라즈 연방감 옥의 폐쇄를 논리적으로 가장 잘 뒷받침하는 설은 재정난에 허덕이다가 결국 폐쇄 됐다는 이야기 이다. 사실 알카트라즈 연방 감옥 자체가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도 였다. 일반적인 감옥에서는 한 명의 죄수에게 드는 비용이 약 $10 정도인데 반해, 알카트라즈에 수용된 한 명의 죄수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32.77 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건물 악화 등과 관련하여 재건에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모자라는 데다가,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제반 관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방 감옥으로서의 알카트라즈의 마지막 달은 1963년 6월이었다. 하지만 악명 높았던 알카트라즈의 묘한 매력에 끌려 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보면 감옥의 명성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 by | 2008/06/02 23:37 | Information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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